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추억을 소환하고 감동을 파괴한다.

'뽑기&자동' 으로 점철된 현 시점의 한국 모바일 게임 생태계에서 게이머들이 즐길만한 타이틀은 그닥 많지가 않다.

하지만, 조금은 달랐던.. 오롯이 '게임을 몰입해서 플레이하는 재미' 를 느껴볼 여지가 있었던.. 
추억의 명작을 리메이크한 게임을 만나 반가운 마음(글의 후반부에 다소 반전이 있지만..)에 포스팅을 해본다. 


[게임 설명]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모바일 SRPG
코에이, 넥슨, 띵소프트
2016년 10월

크게 2가지 모드로 나뉨.
1. 전략편 : 삼국지 시리즈처럼 중국 대륙 지도를 배경으로 도시별로 내정을 하면서 온라인 상의 다른 유저들과 경쟁하며 전투
2. 연의편 : 조조전의 시나리오 모드. 원작 조조전 + 하후연전 + 북부위전 + 장각전 + 태사자전 + 등애전 + 조운전 + 원소전 + 엄백호전 + ... (계속 추가 예정)

연의편. 특정 장수의 시각으로 스토리 모드가 진행된다. 계속 추가되고 있다.

전략편. 영토를 넓히면서 자원 수급이 점점 원활해진다.

전략편. 각 도시별로 내정도 착실히 다져야 한다. 



[배경이 되는 작품 2개] 
삼국지 영걸전
KOEI / 도스 기반
대한민국에는 1995년 수입
영걸전 시리즈 최초 작품

삼국지 조조전
KOEI / 윈도우 기반
1998년 12월 발매
영걸전 시리즈 작품군 중 다섯번째 작품

적어도 위 2개 게임들 중에서 한가지 이상으로 밤잠을 설쳐봤었던 게이머들이라면..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출시의 반가움]
나는 KOEI 칠드런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유년시절부터 DOS창에 'KOEI'를 입력하고, KOEI의 빨간 로고를 보면서, 그들이 만든 게임들을 플레이하며 성장했다.
삼국지 시리즈의 팬이고, 여느 삼국지 팬들처럼 이 장대한 서사시에 등장하는 수백명의 인물들의 이름을 대부분 외우고 있다.
5-1은 장수영입, 8-2는 장수열람, 3-4는 병사훈련... 키보드 넘버패드 마스터를 삼국지2로 했음은 의심하지 않아도 좋다.

이 로고가 반갑다면 당신도 코에이 칠드런!


휴대폰 배터리만 축내는 자동사냥으로 점철된 게임들에 진절머리가 나고 있었던 시점에.. 한턴 한턴 신중한 선택을 해가며 전략적인 플레이의 재미를 주는 SRPG가 너무 반가웠었다. 거기다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삼국지라니! 심지어 과거에 밤을 새가며 재미나게 즐겼었던 추억이 있는 영걸전의 마지막 계보이자 완전체였었던 조조전의 모바일 컨버팅이라니! 땡큐~ 땡큐다!



[플레이 소감]
출시 초반에는 옛 영걸전/조조전의 추억을 소환하는 반가움에 답하듯..
구글플레이 매출 기준 Top 10 안에 진입하는 모습 등 꽤 선전했었다.

초반엔 분위기 좋았다. 나도 일조했다.


조조전 시나리오를 모바일로 즐길 수 있다니! 연의편 스토리를 하나 하나 깨나가는 재미가 좋다.
특히나 삼국지의 매력인 수많은 장수들. 좋아하는 장수들을 뽑아서 육성하는 맛이 꽤 괜찮다. 
약간 어설프긴 하나.. 전략편 지도의 성들을 하나씩 공략해나가면서 영토를 넓혀가는데서 오는 성취감도 있다.

전략편 영토가 넓어질 때 마다 영입 가능한 장수들이 늘어난다.

유명한 장수들은 고유 외형과 음성을 가진다.


장수들의 멋진 일러스트와 고유 음성 및 대사들이 몰입감을 높여준다. 외형이 특별한 장수들은 금전을 주고서라도 갖고 싶은 콜렉팅의 욕구도 자극한다. 삼국지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인 장수들과 관련된 만듦새는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진다. 
또한, 연의편 시나리오에서는 특정 장수의 시각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장수별 스토리를 즐길 수가 있는데, 패키지 게임 시절에 느꼈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컨텐츠였다. 연의편은 계속 업데이트가 되고 있다.

과금없이 플레이해도 크게 막히는 구간 없이 진행이 가능하며, 연의편에서 얻는 보물들과 사건 노가다만으로도 장수들의 육성과 전략편의 영토 공략이 가능한데다가.. 삼국지의 큰 매력인 다양한 장수들의 획득은 몇몇 금전 장수들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플레이를 하다보면 모두 획득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섬멸전(PvP) 같은 경쟁 컨텐츠에만 목메지 않는다면 자기 페이스대로 천천히 즐기는 것이 가능한 게임이다. 이정도라면 혜자 게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핵심 재미]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 가장 재미있는 컨텐츠? 딱 한가지만 꼽는다면 보물 뽑기다. 공식 카페에서 가장 많이 올라오는 게시물들도 6+6 합성 결과(7성이 MAX다), 보물 뽑기 상자 지름 결과.. 등의 보물과 관련된 글이다. 잘 나온 경우에는 축하와 부러움의 댓글이.. 함정이 나온 경우에는 위로와 격려의 댓글들이 달린다.


핵심 수익 모델이기도 한 황제의 보물 상자. 뽑기 결과는 대부분 기쁜 쪽 보다는 슬픈 쪽이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매력적인 장수들을 수집하고 육성하는 재미가 게임 플레이의 메인 줄기이긴 하다. 
그러나 어쨌거나 7성짜리 좋은 무기를 획득하는데 성공한다면 어떤 장수던 간에 착용하는 순간에 전력이 급상승하는데다가.. 'ㅇㅇ주머니' 따위의 보조구가 나오면 전략편의 천하통일 난이도가 급하락하는 등의 짜릿한 반전이 있는 컨텐츠가 바로 '보물'이다. 

또한, 최근 12월에 업데이트된 섬멸전 (5 vs 5 PvP 컨텐츠) 에서 상위 랭커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7성 보물들을 두른 장수들이 필수 요건이다. 좋은 장수들을 잘 키웠더라도 보물들이 없다면 전투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다. 일부 지나치게 효율이나 성능이 뛰어난 사기템이 존재하기도 하고..


7성창+밀주머니를 장착한 조운 하나만 있으면 천하통일은 시간문제


심지어.. 어떤 장수를 키울까를 결정하기 전에 보물 뽑기 및 합성을 통해서 어떤 7성 무기를 얻는지를 보고 난 이후, 해당 무기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장수를 선택하여 끝까지 키울 장수로 결정하기도 한다.


보유템 목록이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천만원 과금해도.. 난 안될꺼야 아마..


상황이 이렇다 보니.. 헤비 과금러들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과금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굇수가 되면 편하게 게임을 즐길수가 있다. 다만, 극악의 확률과.. 7성 보물 중에서도 4,5성 보물만도 못한 퍼포먼스를 가진 함정들이 다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돈슨(돈밝히는 넥슨)' 이라는 별명이 그럴싸 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물 뽑기나 합성에 실패한 뒤 게임을 접는 유저들도 종종 보인다. 반대로 접을 심산으로 7성까지 보물 합성 러쉬를 달리다가.. S급 7성 무기를 획득한 뒤에 다시 조용히 게임을 이어가는 유저도 간혹 있다.



[문제점들]
헌데, 플레이 누적 타임이 1~2주 가량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환상이 벗겨지고,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10~11월 동안에 진행되었던 몇번의 패치들을 경험하며, 종국에는 애정어린 작품을 망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개발사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하나씩 짚어보자면..

1. 불편한 인터페이스
장수들, 보물들, 각종 재료들.. 관리하기 빡치는 허접한 인터페이스로 인해 보유 자산이 늘어날수록 찾아다니려면 짜증난다.
특히나 착용중인 보물들의 일괄 해제 같은 기능은 넣어달라는 목소리가 많은데, 아직까지도 미지원.

2. 한심한 제작 시스템
재료들이 하나씩 하나씩 소진되면서 장비가 제작 되어지는 모습을 완성까지 한없이 지켜봐야 한다. 
승급 단계가 올라갈수록 제작 단계가 점점 복잡해지는데.. 후반부 단계에서는 5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황당하다.
한번 클릭하면 보유 재료들 한꺼번에 소진되면서 제작이 되어야지.. 수년전에 출시된 게임들도 이정도 기능은 기본이었다.
이게 과연 상용화 서비스할만한 수준의 기능인지 의심스러울 정도.

3. 사건 노가다로 인한 피로도 누적
초반부에는 사건 클리어도 재밌다. 한두번이지.. 같은걸 매일 반복해야하는데 그 양이 점점 늘어난다면?!
내가 지금 게임을 하는건가, 인간 매크로가 되는건가.. 기계적이고 의미없는 클릭을 끝없이 반복해야 한다.
하루 종일 붙잡고 있었도 완료를 못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사건수와 극악의 재료 드랍 확률은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4. 마구잡이식 칼질 너프
지원사격 너프(장합, 황충 고인), MP공격 너프(육항, 서서 고인), 최근에는 전화위복 너프(변희, 전위 고인).. 다음 칼질 대상은 누굴까? 를 기대하게 만든다. 기껏 힘들게 성장시켜놨더니.. 금전으로 특성까지 열었더니..  못 쓸 정도로 하향 된다면? 누구라도 화가 날 것이다.
일반적인 게임 운영에서 줬다 뺐는 식의 수정은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밸런스 조정의 명목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들 중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행하는 패치들. 업뎃으로 기쁨과 재미를 더해줘야 하지만, 업뎃으로 실망과 배신감을 선사함. (유저들은 삼국지 통수전 드립과 함께 게임을 슬슬 떠나기 시작.)

5. 불합리한 잠수함 패치 + 잦은 실수
어느날부터 갑자기 공격 시 miss가 심해졌다? 알고보니 쥐도 새도 모르게 명중률이 하향 조정되었다거나.. (이때부터 유저들 사이에서 삼국지 미스전 드립) 특정 패치 이후로는 갑자기 사건에서 재료 드랍이 나무끈만 나온다거나.. (얼추 반나절이 지나서야 긴급 수정. 아마도 카페 반응보고 발견하지 않았을까 싶음.) QA를 생략하고 라이브 서버에 패치를 진행하는건지.. 개발&운영진에 대한 불신과 짜증이 누적됨.

6. 병종간 심각한 밸런스 불균형
삼국지 무인전!? 도사 병종은 함정카드!?
장비, 하후돈, 태사자같은 맹장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는 경기병은 쓰레기!?
특정 병종은 아예 쓸모가 없고, 특정 병종은 듣보잡 장수가 지나치게 강력하다. 
유명하고 좋아하는 장수더라도 병종이 쓰레기라면 도저히 쓸 수가 없는 불합리한 밸런싱.

7. 컨텐츠 부족으로 인한 플레이 동기 상실
천하통일 직후에 찾아오는 현자타임.. 엔딩 봤으니 이제 그만할까 싶다. 
여기에 연의 극한까지 3인장 클리어 완료했다면, 사건과 모의전 말고는 딱히 할게 없음.
섬멸전이 나오면서 그나마 조금 해소되긴 했지만..


전략편 천하통일을 달성하면 엔딩 크레딧을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문제들로 인해서 점점 게임 실행 횟수가 줄어들고, 실행을 하더라도 점차 플레이 시간이 줄어들었다.
비단, 나뿐만이 이런 것이 아니라.. 공식 카페 분위기를 봐도.. 게임 지표를 봐도.. 힘이 쭉쭉 빠지는 모습이다.  

최근 12월에 섬멸전 컨텐츠가 업데이트와 함께 소소한 문제들 개선이 되면서 계속 드러 눕기만 하던 네이버 공식 카페의 분위기도 게임 초반처럼 다시 정상화 되고 활발해진 느낌이다. 나도 섬멸전이 궁금해서 다시 들어가서 몇일 열심히 게임을 돌렸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이미 도를 지나친 노가다의 지겨움에.. 더 이상 게임이 손에 잘 잡히지가 않는다.

더군다나 섬멸전은 5 vs 5 장수 대결인데.. 효율높은 조합은 거의 정해져있다.
특정 장수들에 특정 템들을 두르면 범접하기 힘든 퍼포먼스가 나온다. 
결국, 돈 많이 써서 특정 템들을 손에 넣으면 상위 랭커가 되는 것.
기존의 한국식 자동사냥 RPG들 따위의 생태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섬멸전이 업뎃되면서 추락하던 분위기가 조금 주춤하는듯 싶지만..


아마도.. 섬멸전에서 상위 랭킹 싸움을 하고 있는 굇수들만 남을테지 싶다.
게임 출시 2달 가량만에.. 2년 서비스한 오래된 게임의 모양새가 되버린 듯한 느낌이다. 

몽매거사 이벤트로 보물 뽑기권 등을 자주 뿌리고, 다양한 이벤트로 기존 유저들 멱살을 붙들려는 모양새이나.. 이마저도 반갑다기보다는 더 피곤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오래 버티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여진다.

떠나는 유저들의 멱살을 붙잡고 있는 몽매거사


한두달가량 과거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면서 꽤 재밌게 플레이를 했었다.
이제는 그만 놓아주려고 한다. 안녕..



[마치며]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모바일 게임 시장. 신작을 출시한 뒤에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며 서비스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유료 PC 패키지 게임을 뼈대로 놓고 다듬어 모바일 게임으로 컨버팅 시켰다. 엔딩이 있는 소재를 가지고, 엔드리스로 풀어내면서 게임의 재미, 완성도, 수익성 삼박자를 챙기기란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두터운 영걸전/조조전 팬층으로 하여금 '동정, 위로, 격려, 응원' 따위의 감정들을 이끌어 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증의 개발진들은 업데이트와 패치를 할 때 마다 '짜증, 분노, 실망, 포기' 따위의 감정들을 선사하며 사용자들을 떨쳐내고 있었다. 

'수익성'에 집착하는 기업의 방향성을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돈 벌어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 월급을 챙겨줘야한다.
다만, 좀 더 게임의 재미를 즐길 줄 아는.. 그 재미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좀 더 반영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게임을 '작품'이 아닌 '상품'으로만 간주하는 사람들이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조직에서 이런 식의 부정적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운영 방향성은 바뀔 수가 없음이 팬으로써 서글플 따름이다. 

KOEI와 삼국지의 오랜 팬으로써..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만큼은 '상품'이 아닌 '작품'이기를 기대했었다.
기대했었던만큼 실망도 크다. 고생은 고생대로 해놓고 유저들에게 욕먹는 개발 실무자들도 안타깝고.. 추억과 향수를 느끼며 반갑게 찾아왔다가.. 실망하고 돌아서는 우리 게이머들도 안타깝다.

과거 KOEI식 SRPG를 재미있게 즐기셨던 분들이라면, 한번쯤 설치해서 플레이해보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금하지 말고, 싱글 플레이 하듯이.. 천천히 마이 페이스대로 즐겨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조금씩 성장하는 장수들과 함께 연의 모드에서 시나리오 하나씩 클리어 해 나가는 재미는 꽤 쏠쏠할 것이다. 

추억을 소환하는 반가움으로 시작하였지만.. 끝자락에 감동은 없었던..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사용기를 이만 마친다.


당신의 추억에게 건배. Cheers~!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추억을 소환하고 감동을 파괴한다.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추억을 소환하고 감동을 파괴한다. Reviewed by 우비고고 on 12/27/2016 06:49:00 오후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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